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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브랜드 아파트를 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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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르에 따르면 우리가 브랜드 아파트를 원하는 이유는 "모방 욕구" 때문입니다.


모방 욕구란 타인을 따라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즉, 우리는 스스로 브랜드 아파트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브랜드 아파트를 욕망하는 타인을 따라하는 것이죠.


요컨대, 우리가 브랜드 아파트를 원하는 이유는 타인이 브랜드 아파트를 원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 타인은 우리가 욕망하는 브랜드 아파트 사이에 매개자가 됩니다. 그러면서도 동일한 대상을 욕망하는 경쟁자이기도 하죠.


만약 지라르가 옳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모방 욕구가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대부분 상황에서는 모방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모방 욕구는 일종의 자기 보존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사슴 무리에서 하나가 갑자기 서쪽으로 달음박친다고 상상해 봅시다. 다른 사슴들에게는 도망친 사슴을 곧장 따라가는 행동이 최선일 겁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입니다. 마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전염된 듯 행동해야 하죠. 반대편에서 사자가 달려오고 있으니까요.


군서동물이 지닌 이러한 습성처럼 우리는 대부분 상황에서 생각은 접어두고 일단 다른 사람들을 따라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는 역설적이게도 1등급을 맞아야 하잖아요. 우리 모두는 인서울 4년제를 나와야 하고, 대기업에서 일하거나 전문직을 가져야 하며, 외제차를 소유한 채로 상급지 브랜드 아파트에 거주해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른바 "도태남녀"로 취급받기 십상이죠.


역설적이라고 말했듯이 여기서 문제는 그러한 욕망의 대상을 누릴 수 있는 정원이 정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맞아야 하는 1등급은 3만 명이고, 인서울 대학 입학 정원은 10만 명, 대기업 고용 인구는 총 70만 명,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수는 8만 명으로 집계됩니다. 상급지 입주민 평균 연소득은 1억 원을 웃도는데 연소득 1억 원 이상 소득자는 140만 명입니다.


제 추측이지만 이들은 약 200만 명 내에서 동시에 여러 조건들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200만 명은 전체 인구의 4% 정도입니다. 4%는 수능 등급제에서 1등급 비율이기도 하죠. 1등급은 인서울 대학 입학으로 이어집니다. 인서울 대학 입학은 대기업이나 전문직으로 이어지고요. 그리고 대기업이나 전문직은 연소득 1억 원 이상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레이스에서 승리한 이들에게는 마침내 외제차와 상급지 브랜드 아파트를 누릴 자격이 주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행복을 얻기보다 행복을 누릴 자격을 얻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그럼에도 시간을 들여서 얻을 수만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요? 불행하게도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레이스는 제각기 완주를 목표로 하는 마라톤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타인의 기록을 경신해야만 하는 무한 경쟁이죠. 우리에게 욕망을 설정한 매개자는 우리와 싸워야 하는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브랜드 아파트에 살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의 매개자이자 경쟁자는 더욱 먼 곳으로 떠날 겁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욕망은 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끊임없이 미끄러지게 되죠.


결국 모방은 경쟁과 분열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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